일곡기념사업회
 
 
       
 
게시물 18건
NO.18 송효섭 (2012-02-20 18:11:00) 
안녕하십니까 2012학년도 1학기 일곡장학생으로 선정된 스키안 43기 송효섭입니다.
먼저 일곡 유인호 교수님의 높은 뜻이 담겨있는 장학금을 받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장학생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학업과 학회활동 모두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일곡기념사업회 홈페이지를 통해 교수님의 업적과 사상을 공부하고 받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장학금 수여에 감사드리며 소중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정 삭제
NO.17 이지원 (2010-04-19 03:20:51)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생 1학년 경제학을 배우고있습니다.
경제학을 배우다가 궁금한게 있어서요
교환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것이잖아요
시장외에도 교환되는것이 있나요?
수정 삭제
NO.16 장동만 (2008-12-07 02:01:54) 
Obamerica의 도전과 시련 (상)

1492년 콜럼버스의 발이 닿기까지 미 대륙은 인류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역사 뒤에 숨겨져 있었다. 남미 대륙엔 마야/잉카/아스텍 문명의 기록이라도 남아 있지만, 북미 대륙엔 아메리칸 인디언 여러 부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살았다는 사실 외엔 아무러한 역사 기록이 없다.

이를 두고 고 함석헌 선생은 이런 해석을 하셨다.
“하나님의 뜻이었다. 15 세기까지 꽁꽁 감춰 두었다가 세상에 내 보이셨다. 거기엔 하얀 색, 검은 색, 노란 색, 붉은 색, 모든 인종이 함께 모여 한 번 살아 보라, 인류의 理想國을 만들어 보라! 는 깊은 뜻이 있었다.”

1776년 (한국 연대로는 이조 英祖 시대), 드디어 세계 각 곳 각종 인종들-초창기엔 주로 유럽계이지만-이 모여들어 미합중국을 만들어 냈다. 인류 역사 이래 최초 유일의 다 인종, 다 민족, 다 문화, 다 원화, 복합 국가였다.

그로부터 230여 년, 그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최강국이 됐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오늘날의 미국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 기적을 이룬 원동력 중의 하나에 미국은 역사적인 원죄를 안고 있다. 흑인 노예 제도다. 1863년 링컨이 노예 해방-한국은 1894년 갑오개혁 때 軍國機務處議案에 의해 노예(slavery)와 다를 바 없는 公/私 노비 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되었다-을 선언하기까지 장장 87년 동안 노예 제도를 유지했다. 그 기간엔 ‘건국 아버지들’의 “모든 人間은 평등” (독립 선언) 에서 흑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말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곧 그 ‘人間’이 소외된 백인들만의 나라였다.

2008년, 노예 해방 145년 만에 드디어 흑인-엄밀한 의미에서 ‘흑백’이라고 해야 옳다. ‘피 1% 논리’는 백인 우월주의가 아닌가--대통령이 출현했다 (득표율 52%, 사상 최다 득표수). 백인 67%, 흑인 13%의 나라에서 그야말로 또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함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라고 밖에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이 흑인 대통령을 출현케 하였는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화두는 ‘변화 (CHANGE)'와 ‘변혁 (REFORMING) 이었다. 그 기치(旗幟)를 흑인들, 소수 인종들, 투표한 백인 43%가 받아 들였다. 세계 제 1의 부국이자 강국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그 같이 갈망하는 ‘변화’와 ‘개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금 미국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를 넘는다. 또 다른 조사에선 “미국의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8%나 된다. 무엇이 어떻게 그렇게 잘못되고, 잘못 되어가고 있는가?

각종 통계를 인용, 오늘 날 미국의 현주소를 한 번 짚어 본다. (주: 모든 수치는 미 정부 기관 발표 및 신빙성 있는 여론 매체 보도 인용.)

1) 사회 양극화, 빈부 격차가 너무나 심하다. 2005년 기준, 상위 계층 1%의 소득 규모가 미국민 전체소득의 21.2% (전년 비 19%상승)를 차지한다. 반면 하위 5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2.8% (전년 비 13.4% 감소)이다. 고용 인구 중 연간 소득이 $27,000 (약2,700 원) 이하가 25% 이다. 한편 연방 정부가 정의한 ‘가난한 (poverty)'-가구 당 연 소득 $23,000 이하-사람이 인구의 12.37%를 차지한다. 빈부 격차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 이를 두고 EPI 재리드 번스타인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소득이 이같이 상위 계층으로 집중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지속될 수 없다

2) 미국은 총기의 나라다. “집안의 살인자 (Killer at Home)”, NYT가 총기 문제에 붙인 제목이다. 현재 미국인들이 보유한 각종 총기는 2억 5,000만 정으로 추산한다. 미국 인구 3억명 중 성-/인 모두를 무장시킬 정도의 양이다. 매년 1만여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다. 2004년엔 총기 살인이 1만 654 건이었다.

3) 미국은 감옥의 나라다. 성-/인 138명 중 1명 (220만명)이 주립/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거나 국립/시립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다(2005 년도). 흑인 남성(25-29세) 13명 중 1명 (8.1%)이 감옥에 갇혀있다. 전체적으론 10만 명 당 815명으로 백인의 6.6배(종신형은 백인의 10배)나된다. 한편 집유/ 가석방 상태에 있는 교화 대상 성-/인 인구가 700여만 명이 넘는다. 이번 대선 이후 인종 혐오 범죄가 부쩍 늘고 있다. (2007년 10월 현재 LA, NY 등 6개 도시 한국계 수감자 233명).

4) 선진국 중 의료 혜택이 가장 뒤쳐진 나라다. 건강 보험 없는 사람이 4천 660만 명 (2005년 기준) 이다. 국민 부담 의료비가 1인당 연간 $5,700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평균 수명은 日/英/加/佛보다 짧고, 영아 사망률은 쿠바 보다도 높다.

5) “미국은 탈락 국가이다”, 몇 년 전 타임지 커버 스토리 제목이다. 미 전국 고교 중퇴 비율이 20% (5명중 1명)가 넘는다. 대학 진학률은 30-35% 안팎이다. 그러고도 2년-4년제 대학 중퇴 비율이 43%나 된다. 1992년 문맹률 조사에선 전체 노동자 계층의 4%가 기능적으로 문맹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Obamerica의 도전과 시련 (하)

6) 미국은 세계 최대 대외 채무국이다. 2005년 말 현재, 미국의 해외 부채는 $13조 6,000만 (가구 당 $ 11만 9,000)에 이른다. 2006년 회계 연도 재정 적자가 $ 2,480억, 경상 수지 적자는 $ 8,570억, 합계 $1조 1,000억에 달한 다. 2014 년까지 누적 재정 적자가 $ 2조 3,000억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2008년 9월말 현재,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는 $5,850억, 일본은 $5,732억, 영국이 $3,384억 이다-11/18/08 미 재무부 발표)

7) 미국이 이렇게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를 안고 있으면서도 경제가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은 소위 ‘달러 리사이클링 (dollar recycling-외국이 미국채를 사면, 미국은 그 국채를 팔아 얻은 ‘빚’으로 소비를 하고 투자하는 현상) 때문인데 이것이 언제 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 달러의 국제 결재 기축 통화 체제 그리고 미국의 달러 발권권(發券權)이 지금 큰 도전을 받고 있지 않는가.

미국이 이같이 빚더미 위에서 ‘떵떵거리는’ 것을 두고 워커(정부 회계검사원) 는 말한다. “지금 미국은 로마 제국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다 .

8) 경제의 원동력이 생산/제조업에서 돈장사/금융업으로 바뀌고 있다. 일컬어 ‘경제의 금융화’다 . 1980년 대 초 미국 전체 기업 수익 중 금융 부문 수익은 10% 안팎이었다. 그렇던 것이 2000년엔 금융 부문 수익이 40%로 증가했다. 세계를 풍미하던 ‘Made in USA' 제품이 사라지고 (GM등 자동차가 좋은 예다), 미 달러를 앞세운 돈놀이 (이번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금융 파생 상품이 대표적인 예다)가 국내외 시장을 휩쓴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업만이 번성하는 경제 구조,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9) 2004 회계연도 미 국방비는 $4,915억 (GDP 대비 3.9%)이었다. 2008년도엔 $7,000억이 계상되여 있다. 군비지출 세계2위-15위 국가들의 군사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한편 2008 회계 연도에 미국은 탱크, 전투기, 미사일, 군함 등 $320억 상당의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를 외국에 팔았다.

10) 매년 80만 명의 어린이가 실종되거나 납치되고 있다. 이중 4%가 시체로 발견된다.

11) 저축률은 소득의 17%로 세계 순위 100위 안팎이다.

12) 온실 가스 배출량이 세계 최고이다.

13) 미 전역에 노숙자 (the homeless)가 60만 명이 넘는다.

이상의 통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잘 사는 나라, 가장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인들에게 그야말로 참기 어려운 치부이자 큰 수치(shame)일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뻔지르르한 나라, 속으로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니 “변해야 한다” “뜯어 고쳐야 한다”.는 외침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리해서, 백인 후보보다 변화와 변혁의 기치를 더욱 높게 치켜든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 하나의 신화를 창조했다”는 그의 앞길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변화’와 ‘변혁’은 어떻게 보면 일대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나 어디서나 힘있는 사람들, 살 만한 사람들, 기득권자들은 결코 변화와 변혁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모든 면에 걸친 다양한 주창의 근저에는 하나의 일관된 메시기가 담겨 있다. 평등 사상과 사회 정의다. 이는 곧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이상과 미국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 그 ‘현실’은 하루아침에 ‘지금 같이’ 되어진 것이 아니다. 300여 년 동안 백인들 주도로 구축되어 온 시스템이 굳게 다져져 있다. 그 시스템을 깨지 않고선 어떠한 변화와 변혁도 불가능한데 그는 외친다. “우리는 미국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고. 과연 그의 “Yes, we can do" 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모든 것이 사람에 앞서, 확립된 시스템/메커니즘 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그런데 그 시스템 작동의 주역들인 뷰러크래트 (bureaucrat)들, 그 절대 다수가 모든 분야에서 거의 백인들이다. 그들이 흑인 대통령의 정치 철학에 동조/협력/복종하지 않을 때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설득/승복/협조케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벌써 ‘뉴스위크’지 같은 데선 네오콘들의 ‘반 (反)자본주의 정책’ 운운하는 오바마노믹스 (Obamanomics)를 경계, 우려하는 기사가 실린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이자 ‘세계의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점은 또 있다.
미국의 국익과 범 세계적 인류를 위하는 것과의 상충이다. 당장 한미 간 에는 자동차 문제, 자유 무역 협정 (FTA) 문제가 대두된다.

그리고 또 그가 부르짖는 인간 평등, 사회 정의는 미국만의 가치가 아니다. 범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가치다. “우리의 자유/민주, 최고의 선이고 가치이다” 라고 독단/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온 부시이즘을 벗어나, 이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범 지구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인가. Obamerica의 큰 도전이자 시련이다. <장동만>

://kr.blog.yahoo.com/dongman1936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 멋진 새 한국' (e-book)
수정 삭제
NO.15 yk.lee (2008-11-29 10:25:29) 
S-Kian 창립 40주년 기념식과 송년회를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금번 모임도 작년과 동일하게 현 스키안 회장님(16期 천정진)이 운영하는 부페식당을 이용합니다.

□ 일 시 : 12. 6(土) 12:00~15:00

□ 장 소 : 안양시 하나로 부페웨딩홀

□ 약 도 : 첨부파일 참조
수정 삭제
NO.14 이 연구 (2008-11-28 11:06:45) 
선생님 !
어느새, skian이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합니다.

가슴 벅찬 감회가 없지 않지만, 먼저 선생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가르치심으로 저희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심을 되새기며, 새삼 천국에 계신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 ‘68년 초여름, 교정 “義血塔” 옆 잔디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복교한 몇몇 형들과 공부하는 모임-skian을 만들자 결의했고,
- 그건, “實力不足”때문인지 “勇氣未洽”인지 모르겠으나 어찌됐던, “? % 부족함” 때문에 당시로선, S.K.Y. 다음으로 자리매김 지워졌던 CAU에 둥지를 틀게 된 저흰, 이루지 못한 목표-그 虛飢의 挽回에 고민하면서,
어느 정도라도 만회할 길은, 이제부터라도 더 공부하는 것뿐이라 결론 짖고, “Adam Smith와 J.M.Keynes의 창조적 후계자”란, 꽤 건방진 표방을 들고, 남보다 더 공부하는 경제학도가 되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凡-大學的인 서-클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당국의 지원이 없었음은 물론, 대외활동의 제약도 적지 않았던 참으로 어설픈 모임인데도, 선생님의의 헌신적인 지도와 사모님의 회원들 사생활까지 챙겨주시는 제자사랑이 끈끈하게 이어지면서, 매년 우수한 회원이 間斷없이 수혈되며, 100명이 훨씬 넘는 회원으로 발전, 이제 그 skian이 만 40세 장년이 되었다 합니다.
실로 여기까지, 지금도 실질적으로 저희의 중심이 되어 주시고 계신,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희비가 엇갈리는 일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큰 사건은 선생님의 受難歷程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흰 기회가 될 때마다, 후배들에게 선생님의 이 수난의 역사를 아는 대로 얘기해 주곤하며, 이 시대를 사는 저희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곤 합니다.
- ‘80년의 봄, “知識人 100人 宣言”을 주도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총잡이들에 의하여 南山地下室~西大門 큰집, 그리고 南漢山城 陸軍矯導所까지 섭렵하시는 수난의 여정이 시작되셨고,
그런 가운데에도, 南山地下室에서의 수사관들을 향한 불호령 特講(?), 이어서 서대문 큰집에선 매일아침 철창을 치시며 온 재소자들이 다 기립하여 귀기우리도록 “총잡이 蠻行”을 성난 사자와도 같이 咆哮로 꾸짖으셨다는 勇氣와 時代使役은, 비록 저희 앞에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저희 skian 회원들이게 “時代的 使命과 남자가 사는 모습”을 몸을 살라 보여주신, 학문 이상의 절실한 지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민주화공원에 계신 교수님 ! skian 저희 모두는 가슴깊이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아로새기며, 감사드립니다.

- 또, 선생님과 사모님께서는 저희들에게 큰 자부심과 희망을 주시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빈 항아리에 구슬을 부어 주시듯, 촌각의 로스도 없이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던 모교 교수님으로의 모습뿐만이 아니고, 정권과 무관하게 국가 살림살이의 올바른 방향제시에 늘 주저치 않으심과, 당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도 결코 굴절 없는 가치 표현을 당당히 피셨던 용기, 그 표본이셨던 선생님이 저희를 간절한 사랑으로 지도해 주셨다는 점이 그러하고,
또한, 사모님께서도 선생님의 뜻과 사랑을 그대로 이어 주시며, 거기에 더하여, 저희 어린 재학생 skian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까지 마련해 주시니, 감사와 자부심을 어찌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저희들은 그 장학금의 둥지가 된, 선생님과 사모님이 양평산기슭에 뿌리신 땀, 그 각고와 애환, 그리고 우여곡절을 약간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유난히도 텃세가 심한 그 지역에서의 예기치 못한 수난들로 시작, 농사일은 농업경제학 학문과는 사뭇 달랐던지, 엄청난 수익을 확신(?)하셨던 산비탈 농사는, 해마다 수종과 작물을 갈아 치우신 역동적 결행이 선생님의 호탕한 무용담으로만 수확되어, 저희들 불러, 그곳 五味子로 담근 술자리 안주 감으로 반복하시곤 했던 裏面엔, 두 분의 각고가 짙게 배어 있음을 철없던 저희들도 알 수 있었고, 특히 선생님의 受難旅程이 시작된 ‘80년 초부터는 사모님의 고난과 물질적 고충이 가히 어떠하셨을가 함도 쉽게 짐작이 갑니다.
10수년을 넘게 타신 소형 낡은 차로 장거리를 동분서주하시며, 거칠고 험한 일들에 보대끼시고, 아직 네 자녀분들은 모두 학업 중이었고,---

- 다행인 것은, 재학생 skian들이 모두 열심히 학업에 임하여, 일반 경제학도 몫으로 배정해 주셨던 장학금까지도 자격심사에서 다시 skian 재학생들이 되돌려 받아가게 되곤 한다니, “양평-산기슭 30년 애환이 담긴 일곡장학회의 뜻” - 선생님 사모님의 “땀의 공의”가 헛되지 않고 있음을 보고 드림입니다.

오는 12월 6일은 skian 창립40주년 기념으로 모두가 자리를 같이할 예정입니다.
창립에 참가했던 저희들은 두루두루 그저 감사 할 뿐입니다.
창립의 목적이,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와 사랑으로 발현되어, 적지 않은 경제학 교수들로, 국가기관의 전문 인력으로, 언론기관의 중직으로, 국가경쟁력을 지주하는 유명기업의 핵심 인재들로,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던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이른바, skian/global-family 로 곳곳에 있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번, skian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잠시 돌아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

저희 모두는,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두 분의 뜻에 적극 협조해주신 훌륭한 자녀 분 들께 가슴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8-11-27
skian-40주년 행사를 앞두고,
수정 삭제
NO.13 최보은 (2008-08-21 22:15:34) 
윤봉길 의사께서 매도되고계십니다.도와주세요!!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 사업으로 매헌 윤봉길 기념사업회에서는 많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서초구 양재2동에 위치한 시민의 숲을 매헌공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서초구 고승덕 의원은 단지 "윤봉길 의사가 서초구와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명칭변경을 반대하는 것은물론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을 단지 시민의 숲에 위치한 수많은 시설 중 하나정도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나라를 위해 스물 다섯의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내던지신, 대한민국의 의사(義士)이십니다.그렇다면 서초구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닙니까? 부족하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고 싶습니다. 아고라 이슈청원 세번째, 시민의 숲을 매헌공원으로 바꿔주세요! 글입니다.

링크도 적어두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8168


제가 아고라 자유 토론방에 올린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873565
수정 삭제
NO.12 김수행 학… (0000-00-00 00:00:00) 
"자녀가 '마르크스'공부한다고 겁낼필요 없어요"
[조선일보] 2007년 11월 07일(수) 오후 11:40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 한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사회주의의 바이블(성경)’을 1989년 국내 처음으로 전권을 번역·출간했던 김수행(65) 서울대 교수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오는 22일 정년퇴임식을 갖고 강단에서 물러난다.
그는 좌파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대표적 좌파 이론가였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33명 교수 중 유일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해왔다.

―은퇴를 앞둔 심정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내가 떠나면 서울대 경제학부의 구도가 32대1에서 33대0이 되는 셈인데, 이건 심각한 문제다.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도 있고, 폐해를 지적하는 경제학도 있어야 한다.”

―‘자본론’을 번역했을 당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당시만 해도 그 책은 불온한 금서(禁書)였다. 번역작업을 진행하던 88년 9월, 한 출판사 대표가 이 책의 일부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89년 2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1권(상·하)을 내고, 5월에 2권을, 그리고 90년 3월에 3권(상·하)을 발간했다. 서울대 교수가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식으로 출간해 버리니 경찰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더라. 그 책 판 돈으로 아파트(경기도 산본) 분양값도 냈다. 마르크스가 아파트를 사 준 셈이다(웃음).”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 유효한 모델인가?
“그렇다.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인 이상, 우리 앞에 놓인 기본 문제는 여전히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관계다. 그것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의미 있다. 갈수록 진행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열풍 속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궁핍한 삶을 강요 받고 있다. 근대경제학(영·미식 주류 경제학)으로는 이런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본인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렇다. 나는 자본주의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제도이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 마르크스주의가 좋은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을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각종 굴레에서 해방(解放)시키려는 것이지, 옛 소련처럼 국내총생산(GDP)을 몇 % 증강시킨다든지, 북한처럼 ‘이팝에 쇠고기 먹는’ 물질적 세상을 구현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마르크스주의를 좁은 틀에서 해석하고 밀어붙이다 보니 (옛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당 관료가 자본가를 대신해 억압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결국 무너진 것이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더 바보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을 마르크스주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듯이 하는 얘기다. 어찌 보면 나이 들어서는 타협하라는 얘기인데, 나는 그런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정작 마르크스는 말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에도 얼마나 사이비 마르크스주의가 횡행했는지 보여주는 얘기다. 그의 생각을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경제적 하부토대가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기계적 유물론이 판쳤다. 오죽했으면 마르크스 본인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부인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겠는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말인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냄비근성이 더 문제다.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더니, 이제는 모두들 떠나 버렸다. 그러나 한국에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자가 있었는지 의심이다. 그저 일본 공산당이 번역한 소련 공산당의 팸플릿 수준 책자를 들여와 공부하는 꼴이었다. ‘브레즈네프(소련공산당 서기장)가 말하기를…’이라는 식의 이론이 무슨 마르크스주의인가.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진보에 역행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주의를 배우는 서울대 학생들이 많은가?
“박사과정에 9명, 석사과정에 3명이 있고, 학부에서도 240여 명이 강의를 듣는다. 열심히 공부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경제이론뿐 아니라 철학·역사·사회학 등 폭넓은 시각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서 기업체나 연구기관에서 활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자녀들이 그것을 공부한다고 부모가 겁낼 필요 없다.”(웃음)

◆마르크스주의(Marxism)
마르크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가 확립한 혁명적 사회주의 이론. 잉여가치(이익)를 만드는 원천은 자본이 아닌 노동이라고 규정하고, 노동자의 계급혁명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가 소멸된다고 예측한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연구실에서 김수행 경제학과 교수. /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cun.com
[박용근 기자(글)] [김보배 객원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수정 삭제
NO.11 조성일 (2007-04-23 00:07:30)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나 오늘에야 들러봅니다. 아직도 그 시절의 정열과 꿈과 희망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교수님 생전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외유 내강의 모습을 기려 봅니다. 28일 모임에 참석해서 선배님,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게습니다.
수정 삭제
NO.10 박건신 (2007-01-03 11:04:22) 
유 인호 교수님
기념 사업회 홈 페이지를 접하고 단숨에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먼저 이토록 혼신의 힘으로 의미있고 제자들 뿐아니라 많은 사람들꼐 좋은신 사상 지식 양식을 간직하고 전해주시도록 노력해 주신 사모님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픕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 인자하시게 학문뿐 아니라 인생의 길라잡이로 다시금 대해 주시니 저희 스키안 가족 모두는 그렁그렁한 눈물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씀외엔 드릴 말씀이 생각나지 않네요. 오랜세월동안 희생적으로 지도해주시고 가정까지 보듬어 주셨을뿐 아니라 언제든 찿아뵈어도 풍성한 음식과 시간 지혜등 모두 모구 내주시곤 하셨는데 저는 정작 편찮으셨을때 자주 찿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열심히 건강히 종종 사모님도 찿아뵙고 종종 교수님과의 시간 그리고 가르치심을 되새기며 살아가도록 다짐을 해봅니다.

제자 박 건신 올림
수정 삭제
NO.9 이우용 (2006-12-22 23:10:32) 
전에 요청하셨던 배너수정을 금일 완료하였습니다.
말씀하시자마자 바로 수정하였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정 삭제
NO.8 이매너 (2006-12-19 09:53:41) 
선생님 !

오랫만에 선생님의 사진을 뵈오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세상을 한눈에 뚫어 보시며, 금방이라도 꾸짖고 호령하실 듯 한 위용에서 그러하고,
언제나, 시간을 꽉- 채우시며, 그야말로 석류 알같이 쏟아 부어주시던 강의, 그 모습이 막 이제도 그러하실 듯 함과,
때론, 호탕하심 중에도 깊숙-한 유모어와 자상하심으로, 저희를 보듬어주시던, 넓은 가슴을 생생히 다시 뵙는 것도 같아서입니다.

지난 토요일 밤, 이곳엔 금년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묵직-히 내려 쌓였습니다.
마침, 그날 밤은, 선생님의 손때 묻어 자란, 저희 skian들이 송년회로 모두 모였던, 그 직후부터 였지오.
참으로 고맙게도 먼-길에 사모님께서 참석하여 주셨고, 선생님을 상기할 수 있는 여러 순서가 있은 후에, 아마도 선생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여기에 주신 징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도 오염되고 일그러진 이 땅을 "하늘의 뜻을 빌어" 순백-눈 덮어, 하나 되게 해 놓으시곤, 먼저 녹아 옛 대로인 곳부터, 다시 바로잡아 깨끗게하라 하시는, -

저히 skian 가족, 숫자가 꽤나 많아졌습니다.
금년으로 40기의 회원을 받아들였고,
100여명에 가까운 회원-가히 세대를 뛰어넘어가며, 경제학 교수, 주요일간지의 논설위원장, 이 나라의 국부를 만드는 대기업 임직원, 그리고 알찬 사업가들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동적인 일꾼들 하며,--
중요한건, 저희들 언제 어디서 만나건, 선생님에 대한 회상의 얘기, 그리고 까마득한 후배들에겐, 뿌리를 캐 보이듯, 선생님 소개로 처음과 끝을 다듬어 오고 있음입니다.

선생님 !
이젠, 이곳저곳 둘러보실 곳이 더 많아지셨지오 ?
양평-정승골엔, 지금도 고우시고 반듯하신 사모님이 계시기에 늘 드나드시겠구요,
국내외에 가정과 활동무대를 갖고들 있는 자녀들네 거치셔,
성내동 기념사업회 사무실로,
망월동 민주화 동산으로,
그리고, 흑석동에 들르실 땐, 호적수 P교수님과 바둑도 한판 뛰시겠구요,
그런데 그땐, 저희들 skian 방에도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엔, 막내따님 "진"이보다도 10수년이 더 어린아이들이 금요세미나에 열을 올리고 있지오.
그 중에 학기마다 몇몇에겐, 사모님과 함께 일구신 양평 벌의 땀이, 선생님의 제자사랑 봉투에 담겨 “一谷 獎學金”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하시는 사모님을 통한 선생님의 간접 강의는, 저희 skian 회원들에게, 단순한 학업이행에 더하여, 우리 근-현대 경제상의 진실을 바로 앎으로부터, 지금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에의 학문적 안목과 지식인으로의 참된 용기에까지, 큰 가르침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선생님 ! 감사합니다.
(‘06년의 세모에, 우리의 영원한 지도교수님, 유인호 선생님을 다시 뵈오며)
수정 삭제
NO.7 유경 (2006-12-19 09:28:03) 
유교수님! 얼굴만 뵈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모자라기 한이 없던 이 제자 하나를 처음에는 제자로 가르쳐 주셨고 저의 결혼에 첫 주례를 맡아 주신 후 자식처럼 챙기시고 보살펴 주셨던 날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후에 아이가 셋이나 될 때까지 집이 없던 저희를 안타깝게 여기시고 은행에 근무하던 저의 동창인 제자들을 불러서 선생님이 보증 설테니 저에게 대출해 줄 방법이 없는가 의논 하시다가 결국은 선생님과 사모님의 책임으로 사채를 꾸어 저의 집을 마련할 방도를 마련해 주셨던 일. 또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사모님께서 제 아내에게 큰 돈 오십만원을 맡기며 다시 한 번 새 집을 바꾸어 보도록 권해 주셔서 처음에는, 적은 월급에서 쪼개어 갚는동안 너무 궁색했던 날들이 지겨워서 열세평 아파트가 천국보다 좋다 하며 다시는 빚으로 집 사지 않으려 버티다가 결국은 사모님 뜻을 무시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 근사한 아파트를 얻는 계기가 되어서 우리 아이들기준 부자의 삼대요건인 TV와 냉장고와 쌀통을 갖추고 부자 되었다고 자부하며 살게된 일. 평생을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 떠나시고 사모님만 계시는데 언제 한 번 자식같이 노릇 한 일 없었아옵기에 사모님 뵈올 적마다 죄스럽고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유업을 기리고 발전시켜 후학들의 기초를 북돋우어 주는 '일곡기념사업회'가 영원토록 빛을 발하고 업적을 남기어서 이 땅의 경제학도들에게 더 큰 비젼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의 역사에 큰 획을 그어 나가기를 충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수정 삭제
NO.6 윤승렬 (2006-12-18 08:05:20) 
김 정완 사모님,

'일곡기념사업회'를 시작하시고 홈페이지도 여셔서
저희 제자들이 교수님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캠퍼스에서 저희들을 그렇게 사랑해 주시며,
경제학을 가르쳐 주시고 진실된 삶을 보여주셨던 교수님,
졸업하여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해 주신 은사님을
살아 계시며 왕성하게 활동하실 때 제대로 섬기지 못하여 죄송한 제자들입니다.

사모님과 자녀들이 추진하시는 기념사업회가
계획하신 일정대로 잘 진행되어 나라와 민족에게 짠 소금과 큰 빛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수정 삭제
NO.5 S-Kian 홈… (2006-12-16 00:12:19) 
항상 저희 S-Kian 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곡기념사업회의 홈페이지 첫화면에 저희 미흡한 S-Kian 의 홈페이지가 배너로 연결되어 있어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배너까지 마련해 주실 정도로 저희를 아껴주시는 것 같아 교수님의 저희에 대한 관심을 기념사업회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글을 확인하고 홈페이지를 방문한 뒤 곧 저희 홈페이지 첫화면에 배너를 연결하였습니다.

확인하여 보시고 수정을 요하는 부분이나,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사업회의 왕성한 활동을 기원합니다.
수정 삭제
NO.4 전균 (2006-12-07 08:40:52) 
마지막으로 석사 논문지도를 받으려 했던 상황에서 군입대를 했고
훈련받고 인사드리러 나온 날 저는 선생님의 병환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토록 정정하시던 분께서 어떻게 저렇게..
선생님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아른거립니다.

사업회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정 삭제
 1  2